설진관 小考 199

간지론, 자연론, 물상론 등으로 불리는 명리학(사주명리학은 십간과 십이지지의 관계를 읽어내는 학문입니다.)

사주 명리학은 십간과 십이지지의 관계를 읽어내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사주명리학을 간지론, 간지학이라고도 합니다. 처음 간지론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60갑자론일 것입니다. 60갑자는 다양한 형태가 전해내려고 오고 있으므로 주변에서 많이 접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그 60갑자 이후에 천간 10개와 지지12개의 만남에 따른 간지의 변화를 살펴보기 위한 노력이 많은 역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면서 제 각각 실무에서 활용하기도 하도 혹은 제자들에게 전수하기도 해왔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간지학, 간지론이라고 하여 가장 정미롭게 다루고 있는 것은 신수훈 선생님의 진여명리강론 2권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간지학이 일명 자연론, 물상론이라는 이름으로 강의되기도 한다.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어서 ..

설진관 小考 2020.09.06

(역학여정) 역학의 트렌드의 변화

과거 역학인들이 내방객들을 상대로 행하는 상담은 대부분 길, 흉의 문제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69년 경부터 사주첩경의 등장으로 통변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이 시기부터는 단순한 길흉의 문제에서 재물과 직장운의 영역으로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필자가 경험한 1980~1990년대 역학 시장에서는 길흉의 문제를 주로 다루는 이가 대부분이었으나, 여기서 재물과 직장운 등을 더할 경우 잘 본다는 평을 듣는 시기이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경에는 역학계에 물상론이라는 이론이 퍼져나가기 시작하면서 역학인들의 직관을 강조하는 감정을 하고 많은 이들이 이것을 배우려고 하는 경향이 뚜렷했었습니다. 이 당시의 물상론이라는 것은 최근 역학인들이 흔히 말하는 병은 태양이고, 무는 산이고, 갑은 나무 등 이런 것이 아닌 경은 수..

설진관 小考 2020.08.25

(역학여정) 2000년대 이후 역학계 동향

2000년대 이후 역학계를 경험하면서, 1997~8년 이후 2000년대에 접어든 후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역학계 많은 인사들은 인터넷으로 진출하여 각자가 개인 사이트를 만들기도 하고 개인 카페도 만들어 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는 방송이나 언론과 연계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실력 있는 많은 역학인들은 여전히 마을이나 동네 어귀에서 조그마한 철학원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 일반이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역학인들은 대략 4갈래로 나뉘었습니다. 첫째, 개인 사이트나 카페를 만들어서 자신이 공부한 책이나 스승의 이론을 고집하면서 세력을 규합하는 이른바 문파라는 것이 우후죽순처럼 생겼습니다. 둘째, 역학인임에도 마치 연예인처럼 방송이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이도 많아졌습니다. 대중에게 알려지..

설진관 小考 2020.08.24

(역학여정) 명리학 비결을 찾아서...2

명리학 비결을 찾아서...2 1980년대 중 후반 경, 필자가 10대로 눈높이가 낮아 사주정설, 한국사주학기초연구, 사주비전 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주변 역학인들의 조언으로 사주첩경, 명리요강, 명1.2, 사주핵심비결, 명리정종 등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필자도 20대의 눈이 되다보니, 스스로 명리학 교재를 찾아 나서면서 부산진구 서면에 있는 영광도서, 지금은 문을 닫고 없는 동보서적, 중앙동의 한방서원 그리고 보수동의 대륙서점 등지에서 명리대전, 적천수, 자평진전, 난강망이 합본되어 있는 명리진수전서, 천고비전 사주감정법비결집, 계의신결, 연해자평, 삼명통회 등을 구입하여 매일같이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1990년대 초반에 박일우 선생님의 사무실을 ..

설진관 小考 2020.08.23

(역학여정) 사주명리학 등 역학 동정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임을 먼저 밝힙니다. 제가 수십 년간 역학계를 둘러본 결과 재미있는 현상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 중 특이한 것은 역학인들이 입문한 이후 주로 접하는 교재입니다. 1980~1990년대, 서울, 경기권 영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접하는 것은 대부분 사주정설(1995년 이전)이나 자평진전(1995년 이후)를 시작으로 출발을 하여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적천수로 갈아타는 경우가 있고 그 후에는 궁통보감을 즐겨보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사주첩경을 보는 이는 적었던 것이 의외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산을 비롯한 경상도 지역의 역학인들은 대부분 입문과정에서는 서울,경기 지역과 별 차이가 없이 사주정설로 시작합니다. 그 후에는 적천수를 보거나 사주첩경으로 이동하면서 실력을 쌓..

설진관 小考 2020.08.19

(역학여정) 사주 명리학 등 역학은 자기계발에 최적의 방편입니다.

필자가 처음 주변인에게 당사주를 봐준 것이 1982년 즉, 중2때의 이웃 아주머니를 상대로 입니다. 그 당시 필자는 그 분에게 거지가 된다라고 말하였는데, 그 분은 당시 웃고 넘어갔었습니다. 그런데 수년이 지나고 그 분의 남편이 운영하던 조그마한 공장이 망하는 바람에 연락이 끊어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저의 직업으로 저는 지관(풍수가)이 된다는 것으로 보았는데, 지금 제가 역학방면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을 보면 틀리지는 않았나 봅니다. 1987년 군입대를 앞 둔 친구에게 탕화살 등을 운운하면서 군복무를 하면서 사고를 조심하라며 사주를 봐준 이래, 필자가 20살에 되던 1988년에는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를 상대로 사주명리학을 토대로 진로 상담을 해주거나 때로는 연애상담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다 ..

설진관 小考 2020.08.06

(역학여정) 명리학 비결을 찾아서...

사주 명리학을 비롯한 역학을 연구하는 이들은 비결을 찾아 전국을 헤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자도 일반 역학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저의 기억속의 이야기를 꺼집어 내보려합니다. 필자가 처음 역학을 접하면서 읽었던 책들이 사주정설이었습니다. 개념이 잡히지 않아 어려워할 때 무렵 윤태현 선생님이 저술한 소설 팔자(행림출판사) 1편이 저에게는 자신감을 심어준 책이었습니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부록 편에사주학 이론이 씌어있었고, 부록으로 빨간색 만세력도 받았던 책입니다. 그리고 1986년 경 남궁상선생님의 한국사주학보감, 그리고 이듬해 나온 한국사주학기초연구 이런 류의 책들이 저에게는 전부이었으나, 1988년 부산진구 부전동 서면로타리 구.국민은행 주차장 입구에서 그 당시 절판되어 손에 넣기도 어렵던 명리..

설진관 小考 2020.08.04

(역학여정) 고수들을 찾아서...

1992년 경 그 당시 나름 명리학을 갈고닦은 마음에 한번 겨루어 보고 싶은 마음에 지나다가 철학원 간판이 보이거나 길거리에서 일명 로땡을 하는 역술인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만난 고수들로는 지금은 작고하신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맞은편 골목 여인숙에서 영업하시던 허남원선생님을 비롯하여 유명인사들 대부분은 만났던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 허남원 선생님 선생님은 그래도 어느 정도 학식을 갖춘 분이셨지만, 그 외 대부분의 역학인들은 유명세와 실력은 완전히 별개이었었습니다. 실명은 거론하지 않겠지만 유명하다 하여 방문해보면 용신하나 제대로 가려내지 못하는 이가 많았으며, 조후 용신에 대한 개념조차도 없는 이도 있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 다지 이름나지 않은 역술인들 중..

설진관 小考 2020.07.28

(역학여정)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초학 시절..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초학 시절.. 1988년 당시 용신 잡느라 고생하고 있었던 시절, 지금은 철거된 부산진구 미하이야리아 부대 옆에 여인숙 2층에서 철학원을 하시던 老신사께서는 필자에게 사주정설만 제대로 보면 많이 보인다고 하면서 서재에서 사주정설을 필자에게 보여주었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 필자는 사주첩경, 명리요강, 사주정설, 사주비전, 대사주비전, 명 이런 류의 명리학 교재를 보고 있던 상황인지라 반갑기 그지없었습니다.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부산진구 부전동에서 초읍으로 올라가는 새싹로 입구의 국민은행 주차장 입구에서 명리학 등 역학 책을 복사해서 판매하시던 어느 영감님... 그 영감님은 당시 갓 20살이 넘은 필자가 다가가면 이책 저책을 보여주면서 복사된 명리학 책을 보여주면서 호객..

설진관 小考 2020.07.28

(역학여정) 제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것은 역학, 명리학에 저의 인생 대부분을 걸었던 것입니다.

저는 본시 가진게 없고 남들에게는 흔하고 흔한 백 조차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굳이 백이라면 제가 가진 역학,명리학적 지식이 전부이었고 역학은 저에게는 인생 전부이었습니다. 10대때부터 시작한 역학,명리학은 나이가 들어가니 이제는 저에게 훌륭한 백이 되었습니다. 어릴때 TV에 방영되었던 만화 '캔디'가 생각납니다. 고아원에서 자란 캔디는 언제나 외롭고 쓸쓸해도 항상 즐겁게 웃으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스토리이었습니다. 저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술을 마시거나 고스톱,당구,축구 등을 즐길줄 모릅니다. 아뇨 할 줄도 모릅니다. 오로지 명리학을 비롯한 역학외에는 할 줄 아는게 없습니다. 저의 일상 대부분은 역학,명리학이었고, 지금도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한평생 외롭다거나 쓸쓸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왜..

설진관 小考 2020.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