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진관 小考

(역학여정)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초학 시절..

김초희 2020. 7. 28. 10:56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초학 시절..


1988년 당시 용신 잡느라 고생하고 있었던 시절, 지금은 철거된 부산진구 미하이야리아 부대 옆에 여인숙 2층에서 철학원을 하시던 老신사께서는 필자에게 사주정설만 제대로 보면 많이 보인다고 하면서 서재에서 사주정설을 필자에게 보여주었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 필자는 사주첩경, 명리요강, 사주정설, 사주비전, 대사주비전, 명 이런 류의 명리학 교재를 보고 있던 상황인지라 반갑기 그지없었습니다.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부산진구 부전동에서 초읍으로 올라가는 새싹로 입구의 국민은행 주차장 입구에서 명리학 등 역학 책을 복사해서 판매하시던 어느 영감님... 그 영감님은 당시 갓 20살이 넘은 필자가 다가가면 이책 저책을 보여주면서 복사된 명리학 책을 보여주면서 호객(?)행위를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하늘이 보낸 은인인 것 같습니다. 그 당시 그 영감님과의 인연으로 사주첩경 시리즈, 명리요강, 명리사전 등 귀한 책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 명리학 교재는 명리요강,사주첩경, 적천수천미가 대부분이었으나, 그즈음 발간된 월간 역학이 반가웠습니다. 매월 월간역학을 구매하면서 월간역학에 연재 중인 자평진전(1991년 당시 월간역학에 자평진전이 연재)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명리와는 또 다른 세계를 알려주는 그 당시로는 신선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항상 목이 마른 것은 통변을 하고 싶은데 통변술을 넓혀갈 수 있는 교재가 없어서 힘들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서점으로 달려가서 명리학 교재를 살펴보고 했었지만 그 이상의 교재는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용신과 격국 이론이 주류인 교재만 잡고 씨름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1990년 경오년 군에서 휴가 나와서 부산 서면 영광도서에서 명리학 책을 뒤적이고 있다가, 곁에서 역시 명리학 책을 뒤적이던 30세 전후의 남성이 다가와서는 자신도 이 공부에 관심이 많은데 사주를 봐줄 수 있느냐고 하므로 흔쾌히 승낙했었다, 그 당시 그에게는 동행한 남성이 있었는데 세명이 인근 다방으로 향하였고 필자는 그곳에서 그 남성의 사주를 봐주었는데 그 남성은 어릴 필자를 칭찬하면서 자신의 집에 있는 명리학 책을 필자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고 하므로 그를 따라갔다가 그로부터 명리정종과 천고비전 사주감정법비결집을 얻어 이를 일독할 수가 있었다.

 

1990년대 초반 홍정 선생님의 자연법 이론은 궁통보감(난강망)과는 다른 아주 훌륭한 명리학 교재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자연법 교재일 것입니다. (* 그 이후 이 교재를 본떠서 너도나도 난강망 또는 뜬금없는 박도사 비법이라는 이름으로 명리학 교재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대부분 홍정 선생님 교재의 범주 속에서 내용이 형성되고 통변도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였습니다)

 

1995년 즈음, 필자는 그 당시 자연법 이론에 국내외 약 4종의 십간론을 수집하여 비교하니 극단으로 차이 나는 것을 발견하고 실전에 두루 적용하여 비교분석을 통하여 가장 잘 맞는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그것이 상론 사주학 즉 회화 사주학의 효시가 됩니다. (*야학신결에 요약 부분이 수록되어 있음).

 

1998~9년 국내에 중국인 포여명의 십간론이 국내에 번역되어 발간된 적이 있으나 평범한 수준에 그친 내용으로 이렇다할 내용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십간론을 본 이들은 이 포여명의 십간론을 마치 비법인양 그 내용을 강의하거나 자신의 저술에 수록한 것을 보고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1994년 경 그 당시 월간역학에 연재된 초과학개운법의 필자인 박일우 선생님 사무실에 연락하여 사계단법 등 이론이 수록된 명리학강론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1995년 경에 이르러, 저는 진여비결의 전신인 ①인연법, ②사계단법 그리고 ③ 이 당시 정립한 상론사주학 이론으로 무장하여 그 당시 역학의 고수들이 즐비하다는 부산의 이름난 역술인을 찾아나서게 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