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진관 小考

(역학여정) 명리학의 원류를 찾아서...1

김초희 2020. 10. 3. 12:58

처음 사주명리학을 공부할 때에는 무엇을 학습해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외워야 할지 난감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비교적 입문은 일찍 했지만 당시 10대인 필자가 학습하기에는 이해가 너무 어려워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1985~6년 경 비로소 사주명리학에 정열을 태우는 계기가 된 듯 합니다. 이 당시에는 사주명리학과 관련한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이었는데 이 당시 윤태현 선생님의 소설 '팔자'(행림 출판사)는 사주명리학을 소재로 한 소설이었습니다. 상당 부수가 판매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을 구입하면 빨간색 표지의 작은 사이즈의 만세력을 부록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권짜리 命이라는 책이 나오면서(이후 命1.2로 분리) 사주명리학은 대중화를 이루는 듯했습니다.
이런 책들은 필자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었습니다. 그 전만 해도 무엇을 학습해야 할지 무엇을 암기해야 할지를 몰라서 버벅거리기 일쑤이었는데 이런 책들이 등장하면서 길을 알 듯했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구.영광도서 2층에 가면 항상 접할 수 있었던 추송학 선생님의 육효와 사주명리학 시리즈는 더할 나위 없는 양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연이 된 책이 사주첩경과 명리요강이었습니다. (이 당시 읽은 사주첩경과 명리요강은 최근까지도 강의하면서 손에 들고 있던 책들입니다.)

1989년 부산 동구 좌천동에 있는 부산일보사 건물로 기억이 나는데 그곳에서 어느 선생님이 자연에서 찾은 역이라고 하면서 대중강연을 했었는데 당시 우연히 대중강연에 참석하여 강연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의 강연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오행의 생극과는 판이하게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아니 추측조차 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명리학 교재 그 어느 곳에서도 원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들어있지 않았으며 이후 군에 입대한 후 휴가를 나오거나 외출을 나올 경우 대부분 역학과 관련된 서적이 많이 있는 곳이나 철학원을 방문하여 시간을 보내기 일쑤이었지만 돌아오는 건 결국 '아무도 모른다.' 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93~5년 사이에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의 역학자료까지 손에 들어오면서 그야말로 중구 난망이 되면서 배가 산으로 가는 격이 되어 한때는 정통 명리학이 아닌 바야흐로 괴물 명리학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한마다로 정리가 안된 것이지요.
이때부터는 국내에서 학습할 수 있는 교재나 역술인들에 대한 불신이 생기면서 역학 이론을 새롭게 정리하기 시작하게 되었고 어느순간 제법 그럴싸한 학술 정립까지 되었습니다.
이 당시 손에 꼽는 첫 번째는 십간의 이론이었습니다(이 당시 이론은 현재 시중에 떠도는 십간론이니 자연론이니 물상론 등과는 다릅니다.).
필자가 기문학을 연구한 덕분에 쉽게 학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궁통보감의 조후론을 더하여 이른바 상론사주학을 창안하였습니다. 상론사주학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서울의 이경원선생님의 많은 자료와 홍정선생님의 책은 많은 참고가 되었음을 솔직히 밝힙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론사주학은 너무나 특이하여 그 적중률은 운기론 사주학에 젖어있는 역학인들에게는 놀라움을 주기에는 충분했었습니다. 상론사주학을 가지고 나오면서 부산경남의 많은 고수들을 찾아다니면서 이른바 도장깨기를 하면서 '무용신/무격국/무신살/무지장간/무포태법'을 외치고 다녔었습니다. 어느 순간 부산에서 20대의 젊은 고수로 알려지면서 이제는 저로부터 사주명리학을 배우겠다는 분들이 여기저기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가 1997년입니다.

1997~1999년 약 3년 동안 부산진구 부전동에 있는 월산철학원의 원장님의 배려속에서 20대인 필자는 부산경남의 많은 현직 역술인들을 대상으로 상론사주학, 사계단법, 인연법 등 사주명리학 강의를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9~2000년이 되면서 참으로 특이한 인연을 만나게 되면서 아직 밝힐 수 없는 귀한 자료를 손에 넣게됩니다.
그 자료를 보면서 그간 잊고 있었던 갑합, 지합, 형, 충, 파, 해, 삼합, 12신살과 12운성 등에 대한 원리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