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진관 小考

(역학여정) 다양한 명리학 이론

김초희 2020. 9. 30. 12:42

(역학여정) 다양한 명리학 이론

저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제가 겼었던 부산 경남 쪽 역학인들을 기준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당시에는 역학인들을 많이 만나고 다닌 시절이다 보니 다양한 이론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같이 인터넷이 있는 세상도 아니었고 책도 많이 발간되는 시절도 아니었습니다.

 

이 시기는 부산이야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역학계의 고수들이 가장 많이 있었던 곳일 겁니다.

이 당시 사주명리학에 관하여 역학인들이 주로 읽는 책은 사주첩경, 명리요강, 천고비전, 연해자평, 명리정종 등 정도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부분 역학인들은 이들 책 이외에 상당수의 필사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필사본들은 위에서 논했던 책과는 성질부터가 다른 실전 이론들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부산에 역학 고수가 많았으며 이름하여 역학의 메카라고 전국에 소문나지 않았나 하고 추정합니다.

 

그 당시에는 위에서 논했던 사주첩경, 명리요강, 천고비전, 연해자평, 명리정종 등은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반면 필사본은 정말 고액을 지급하지 않으면 구할 수 없었던 자료이었습니다. 제가 1998~9년경에 지인들에게 나눠주었던 필사본만 해도 약 50종에 이를 정도이었습니다. 지금도 제가 소장하고 있는 그 당시 필사본은 약 20종에 이를 정도니 말입니다.

그 내용에는 용신, 격국, 지장간, 신살, 형충회합 등에 대한 각 선생님들의 주장들이 많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평진전과 적천수천미의 영향 때문인지 대부분 화토동궁을 많이 따르고 있었지만 그 당시 필사본들을 보면 화토동궁뿐만이 아니라 수토동궁을 사용하시는 분들도 상당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부산에서 수토동궁을 중심으로 사주를 살피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고 그런 분들 중에서 고수가 상당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곳에 밝히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외에도 지금은 비결 중에 비결이라고 알려졌던 인연법 내정법 등도 필사본 속에 상당수 있었습니다. 그 중 인연법자료는 제가 발견한 것만 해도 5종이었습니다. 그 당시 박도사라는 인물이 부산에서 활동하던 시기이므로 저는 의당 박도사의 인연법인 것으로 오해하여 pc통신 하이텔에 최초로 공개 방출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건 신수훈 선생님의 진여비결이었지요. (지금도 인연법이 박도사의 인연법으로 잘못알고 게시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건 전적으로 제 잘못입니다.)

 

이처럼 부산에는 역학계의 고수들이 많았었습니다. 그런데, pc통신이 생겨나면서 인터넷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사고가 이름 있는 명품을 좋아하는 분위기가 이어져서 그런지 점차 후학들은 이런 필사본에서 눈은 멀어지고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로 눈이 돌아가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 입문하면서 그것을 맹신하게 되고 그것으로 후학도 가르치게된 것입니다.

부산 보수동에 있던 대륙서점에는 이런 필사본들만 모아서 판매되기도 했었습니다.

이 당시 필사본 속에서 보았던 비결들을 한곳에 모아서 연구하면서 깨달아가는 재미는 그 어떤 놀이보다도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연구했던 자료들은 야학신결(윤경선외 3인 공저)과 추명가해설서(박상호,이지선 공저)에 들어가 있거나 녹아 있으니 여러분들은 글을 읽으시면서 음미하시면서 읽어보시면 더 큰 느낌이 있으실 겁니다. 그래서 전국의 많은 역학인들은 야학신결(윤경선외 3인 공저)과 추명가해설서(박상호,이지선 공저)의 내용이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고 느끼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명리학외에도 부산에서는 성명학과 육효를 많이 했었습니다.

성명학이론은 워낙 많은 이론들이 있어서 주장하는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결론이 나오니 어느 것이 맞다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子의 획수에 대하여도 어떤 이는 3획으로 어떤 이는 2획으로, 王의 획수에 대하여도 어떤 이는 4획으로, 어떤 이는 5획으로, 어떤 이는 6획으로 보기도 하는 등 제각각 다르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 때문에 실제 말다툼도 많았었습니다.

 

부산에는 명리학뿐 아니라 육효도 꽤 유명한 고수가 많았었습니다. 육효분야는 서울쪽에서는 이석영 선생님과 양철암 선생님이 계셨지만 부산에는 이승철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이석영 선생님과 양철암 선생님은 이미 작고하시고 오로지 육효학 저술들만 각각 남아있습니다. 반면 이승철선생님은 아직 현역에서 활동하시기도 합니다.

이러한 육효에 대한 사랑은 1995~6년경 부산에서 고수들의 형충회합 풀이법, 내정법, 내방일시와 사주를 대비한 풀이법, 간지술, 일진과 시두를 활용한 풀이법, 내방일시만 활용하는 풀이법 등 다양한 풀이법들이 방출되면서 육효에 대한 관심은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부산에서는 풍수학을 연구하는 이가 드문 편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풍수를 공부한 것이 1990년대 후반에 김종철 선생님의 저술을 시작으로 뒤늦게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풍수 공부를 했다고 하더라도 고수라도 보이는 분은 찾아보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