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五星)은 오행(五行)으로, 오행(五行)은 다시 십간(十干)으로 발현되면서 그것은 인간(人間)의 의식세계에서 육신(六神)으로 대변한다.
그리고 육신(六神)은 상론(象論)이라는 큰 벽을 만나게 되면서 상론(象論)은 육신(六神)과는 또 다른 영역으로 변이되어 발전된다.
육신(六神)과 상론(象論)은 미세한 변이로 인하여 서로 엮이기 힘든 경계에 마주하고 있어 이들의 선택은 인간(人間)의 몫으로 치부되었으나,
이들을 연결할 수 있는 카테고리, 육신(六神)의 삼변(三變)과 상론(象論)의 삼변(三變)이 있음을 알지 못함은 역시 인간의 이욕(利慾)과 자만(自慢)의 결과가 아닐는지...
자연(自然)은 자연(自然)으로 순천(順天)하여야 하고,
자연(自然)에 인간(人間)의 이욕(利慾)이 결부되는 순간 역천(逆天)으로 귀결되니 이미 자연이 아니다.
설진관
*항간의 떠도는 십간론과 상론은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 다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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