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진관 小考

동양학, 역학계가 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학위가 발목을 잡아서는 안됩니다.

김초희 2021. 11. 22. 09:37

이제는 명리학, 풍수학 등을 연구하는 동양학, 역학계가 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학위 등 간판류가 발목을 잡아서는 안됩니다.

전국 각 대학에 명리학, 풍수학 등을 다루는 소위 동양학과가 많이 생기면서 대학원에도 석박사 과정이 생겨나고, 이른바 역학과 관련한 동양학 석,박사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런데 동양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는다는 것과 현장에서 발휘하는 실력과는 대부분 무관합니다.

 

처음 명리학 등 동양학에 입문하면 주위에서 너도나도 사주니 궁합이니 등 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이럴 때 제일 큰 문제가 통변입니다. 사주 명식을 보면서 용신이니 격국이니 비슷하게라도 골라내고  '좋다', '나쁘다' 식 외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니, 오히려 문점자는 '더 보이는 게 없어요?'라며 되 묻곤 합니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명리를 학문으로 공부하는 사람이지 점치는 사람이 아닙니다'라면서 둘러됩니다.

 

그러다가 좀 더 배우거나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동양학과가 있는 전문대학이나 4년제 학부과정의 대학으로 진학하고(전문대학이나 학부과정의 대학이 만학도를 위한 과정이 많아 학위가 있는 분들이 재 진학하는 경우가 많음), 때로는 석,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중에서 명리학 등 역학과 관련한 동양학 박사학위를 받게 되면 상황이 반전하게 됩니다. 더 이상 명리학 등 동양학을 공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애매해지게 됩니다. 대략 동양학 박사학위를 받게 되면 더 이상 배우러 갈 곳이 없어지는 상황이 바로 그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미 실력이 박사라서요? 아닙니다.

사실 박사학위를 받고 나면 아무리 더 배우고 싶어도 그리고 물어보고 싶어도 체면상 못 가고 못 물어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명색이 동양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어디 가서 고개 숙이고 할 입장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결코, 동양학 학위가 개인의 실력 향상에 걸림돌이 되거나 발목을 잡는 상황이 생기면 안 되는 것입니다. 대학원 과정의 학위는 학위일 뿐이지 그것이 실력을 증명하는 것도 아닙니다. 적어도 동양학 분야 만큼은 그러합니다. 그러니 박사 학위자라는 자만의식은 그만 던져버리고 이제는 배움의 현장으로 나가 실력을 쌓도록 해야 합니다. 전문대학이나 학부과정을 지고하시는 분들도 명리학 등이 지나친 현학적인 영역으로 빠지지 말고 이제는 현실로 돌아와서 현장에서 에 필요한 요소들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소위 대학이라는 곳은 역술 현장의 소리를 담아서 그것을 학문이라는 형태로 포장하여 학설로 정립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학계에는 대부분 현장의 소리를 담아내지 못하고 과거나 지금이나 줄곧 고전만을 답습하면서 다람쥐 채바퀴 돌듯 이런저런 류의 말들만 자아내고, 심지어 고전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선현들이 남긴 주옥같은 명문을 이른바 과학이라는 미명으로 난도질을 하지는 않나 때로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자기만의 소설을 쓰고, 궤변을 늘어놓기 일쑤입니다.

현장에는 고전에 다루지 않는 이론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전에 언급된 사실이 없다는 이유로 철저히 외면하고 있으니 기가찰 노릇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현실은 고전에는 나오지 않는 수준높은 명리학 이론들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고전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는 작자가 누구인지 몰라서? 이론의 출처를 알지 못해서? 책이 나온지 100년이 넘지 않아서? 현재 셍존가의 이론이라서? 등 이유로 현장의 소리는 철저히 외면 받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의 소리의 김분재 선생님의 경우만 보더라도 김분재 선생님께서는 고전명리학 교재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그리고 결코 틀릴 수 없는 기법의 이론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고전에 없다는 이유로 학계에서는 외면 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반드시 현장의 소리가 반영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학계와 현장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기 현상이 없어기제 되는 것입니다. 학게에서는 고전만이 아닌 현장의 소리까지도 연구하면서 그 결과물을 도출하여 다시 현장에 통용될 수 있도록 이른바 피드백이 되도록 하는 것이 학계의 역할입니다.. 그렇다하여 현재의 학교 등 학계가 무용지물인 것은 아닙니다. 학교에서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은 자신과의 인내의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그 학위는 장차 학교 등 강단에서의 역할을 할 경우 가장 객관적인 자격을 인정받는 측도가 되는 장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주절주절 이런저런 생각끝에, 한국의 동양학 전공자들의 실력발전에 대하여 고심하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가 비록 가진 지식이 일천하고 능력이 미약합니다만, 가까운 장래에 코로나 팬데믹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나면 최소한 부산, 울산, 경남지역에 있는 동양학 전공자(전문대학~박사)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학술의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계획이 있습니다.

 

어느 누군가가 나서 준다면 결집이 있을 것이고, 결집이 있으면 성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양학이 고전 속에서 나 홀로 아우성보다는 현장의 소리를 듣고 그것이 결합되어 정리해갈 때 비로소 명실상부한 훌륭한 학문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럴 때 우리의 후손들에게 역학자들이 점쟁이가 아닌 훌륭한 동양학과 내지 역학자로 각인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마냥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무언가 해야 할 시점이 점차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의 소명이라면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설진관..